Apr 15, 2024 | Sechseläuten (잭셀로이텐)
잭셀로이텐은 유럽에서 가장 큰 축제 중 하나로, 스위스 취리히에서 4월 3주차 월요일에 개최된다. 겨울을 보내고 따뜻한 봄을 맞이하는 의미를 담은 축제이다. 이 축제를 위해서 취리히 시내 전체가 일주일 전부터 다양한 깃발로 도시를 장식하고 있었다.
이 축제에서 사람들은 엄청난 대규모의 퍼레이드를 진행하고, 마지막으로 눈사람 모형인 Böögg 를 화형해 터뜨리는 것으로 축제를 마무리한다. 눈사람이 더 크게 터질수록 겨울을 무사히 보내고 봄을 맞을 수 있다는 의미를 담는다고 한다.
잭셀로이텐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reMAUjcafv8
이날은 취리히 칸톤의 공휴일이다. 그런데 완전한 공휴일은 아니고 오전에는 수업을 할거 다 하고, 오후만 쉬는 반나절 공휴일이다. 그래서 오전에는 할일을 하다가 오후에 축제를 즐기러 나왔다. 퍼레이드가 3시쯤 시작하고, 눈사람 Böögg (뵈그) 처형식은 6시쯤 진행한다고 해서 3시에 맞춰서 취리히 시내로 나왔다.
오히려 취리히 퍼레이드보다 더 성대하게 이뤄졌는데, 사람들만의 행진이 아니라 말이 정말 많았다. 말을 타고다니기도 하고, 말이 수레를 끌기도 하고, 말이 뒤에 커다란 마차를 끌고 다니기도 했다. 퍼레이드 팀의 규모도 엄청나서 2시간을 관람해도 끝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본격적으로 취리히 퍼레이드가 시작한 순간이다. 교통 통제가 정말 체계적으로 잘 되어 있었다. 퍼레이드 경로에 차량과 트램은 모두 통제되고, 퍼레이드 행렬이 지나갈 수 있도록 안전요원분들이 길을 뚫어준다. 또 아예 길을 막아 둔게 아니라서 통제하는 사람의 손짓에 따라 퍼레이드 행렬 사이의 몇분간의 공백에 사람들이 유동적으로 지나다닐 수도 있다.
잭셀로이텐 행진 영상
개인적으로 모든 행렬 중에 스위스 그웬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성경 컨셉으로 코스프레를 한 팀이 정말 많았는데, 동방박사, 유대인, 십자군 등 다양한 컨셉의 퍼레이드 행렬이 이어졌다. 이곳 사람들은 코스프레와 퍼레이드에 정말 진심인 것 같았다.
잭셀로이텐 퍼레이드 영상
그리고 퍼레이드 행렬이 지나가면서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준다. 어린애들은 바구니에서 사탕과 젤리같은 것들을 손에 하나씩 쥐어주고, 어른들은 퍼레이드를 구경하는 사람들 손에 쥐어진 컵에 와인을 따라주기도 하고, 꽃다발을 나눠주기도 한다.
퍼레이드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퍼레이드가 지나가길 기다리다가, 아는 사람이 있으면 행렬 사이로 들어가 꽃다발을 건네주고 간단한 포옹과 키스 정도를 나눴다. 따라서 퍼레이드 하는 사람들의 손에 꽃이 얼마나 많은지에 따라 인싸도를 파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꽃다발이 풍성하더라.
직접 만든 것 같은 와인을 나눠준다. 완전 어려 보이는 친구가 내 손에 컵을 쥐어주고 와인을 따라주길래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건물 위에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이날따라 그로스뮌스터 성당 위에서 펄럭이는 취리히 깃발이 정말 멋있었다.
퍼레이드 행렬을 2시간 동안 구경하다가, 뵈그 처형식을 좋은 자리에서 보기 위해 미리 자리를 이동했다. 정말 사람이 많았고, 그 사람이 빽빽한 곳에서 발 디디기도 힘들 정도였는데 취리히에서 이정도 인파가 몰린 것은 정말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이와중에 이 사람들 사이에서 대마를 피는 사람이 있어서 정말 어지러웠다. (아마 대화를 들어보니 미국인인 듯 했다.) 차라리 담배를 피기를 바랠 정도로 대마 냄새는 최악이다.
아무튼 아까 받은 와인 한잔을 마시고 머리가 아픈 데다가 사람도 너무 북적이고, 옆에서는 대마를 피우고 햇빛은 강렬히 내리쬐서 정말 눈앞이 까매지고 토할 것 같았다. 시야가 좁아지고 정말 버티기 힘들 정도로 메스꺼워졌을 때 혹시 나한테 준 와인에 메탄올을 탔나 의심이 될 정도였다. 속이 울렁거려 도저히 가만히 서있을 수가 없어서 쪼그려 앉아서 바닥을 보고 진정하고 있었는데, 뒤에서 스위스 사람들이 괜찮냐고 물어보고 나에게 물을 권했다. 이곳 사람들은 정말 친절한 것 같다.
일어날 때마다 시야가 좁아지고 메스꺼워져서 도저히 오래는 못 있겠다 싶었다. 눈사람이 폭발할 시간을 맞춰 보라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나는 이전까지의 평균 시간인 32분을 썼다. 그래서 여기서도 1시간 정도를 기다렸는데, 눈사람 주위를 도는 기마대만 있을 뿐 눈사람에 불이 붙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듣고 보니 이날 강풍이 불어 뵈그 화형식이 취소됐다고 하더라. 그래서 큰 실망만을 안고 돌아갔다. 뵈그를 처형하지 않은 2번째 해라고 한다.
뵈그가 제대로 터지지 않는 해에는 불길한 일이 있을 징조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다음날부터 강한 햇살이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날이 갑자기 추워지고, 며칠 뒤에는 2월과 3월에 취리히에서 단 한번도 보지 못한 우박과 눈도 내렸다. 설상가상으로 다음날, 한번도 서로 만난 적 없는 내 수퍼바이저가 감기에 걸리고, 내 버디도 감기에 걸리고, 또 그 다음날 내가 감기에 걸렸다. 아무튼 미신이지만 꺼림직한 일이었다.
잘 살아남은 뵈그와 그 주위를 빙빙 도는 기마대
https://youtube.com/shorts/0CbbEeM4CeA
축제 인파를 헤집고 다시 연구실로 돌아와 남은 일을 마무리 하고 집에 돌아갔다. 다음에 취리히로 대학원을 꼭 와서 뵈그 처형식을 다시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