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 18, 2024 | 눈구름 맛좀 볼래?
이게 무슨 일일까, 아침에 일어났는데 평소랑 다른 한기가 느껴졌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1월 30일에 스위스에 와서 2월, 3월 동안 취리히에 눈내리는걸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해가 뜰 동안에 온도가 10도 밑으로 내려가는 일이 흔치 않아서, 1월달에도 호수에서 비키니만 입고 수영을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고도가 높은 알프스면 만년설도 있으니 눈이 내리겠거니 싶은데 갑자기 4월에 눈이라니? 진짜 말도 안되는 경험이었다. 진짜 Sechseläuten 에서 눈사람 처형이 실패해서 받은 저주가 분명하다.
4월인데 창밖에 눈이 내려요
봄학기에 왔는데 취리히 설경을 보게 될 줄이야...
눈이 와서 신나가지고 밖에서 뛰어노는 나
https://youtube.com/shorts/GwkPcX05wjc
아무튼, 집에서 점심까지 해결하고 학교에 가니 언제 그랬냐는 듯 취리히 시내는 정적이었다. 구름이 가득 껴 있었지만 금새 날이 따뜻해져 비나 눈이 내리지는 않았다. 물론 시내에 눈이 쌓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무슨, 동네 뒷산에는 스키장마냥 눈이 주르륵 쌓여있는게 아닌가? 알프스에 올라가면 밑에는 봄꽃이 펴있는데, 어느 높이 이상의 봉우리를 보면 눈이 한가득 쌓여 있는 경우는 허다 하다. 관악산에서도 우스갯소리로 아랫동네에는 비내릴때 윗공대에는 눈이 내린다는 이야기를 하긴 했었지만, 여기는 그걸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 산 봉우리에 눈이 쌓이는게 아니라 산 비탈면에 눈이 쌓여 버린다.
서울보다 춥지도 않고, 그렇다고 산이 높지도 않은데 고도에 따라 눈비가 나뉘고 산비탈에 눈이 쌓인다니 아무튼 신기한 동네다.
ETH 메인 빌딩이 드디어 텅 비워졌다. 항상 메인 홀에서 행사를 하고 있어서 홀의 온전한 모습을 구경하기 힘들었는데, 드디어 그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다. 가운데 아무 행사도 하고 있지 않으니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집에 갈때쯤 되니 먹구름이 물러가고 햇빛이 드러나고 있었는데, 저쪽에서부터 다가오는 밝은 푸른색의 하늘은 정말 뭔가 악이 정화되는 느낌을 줬다. (Böögg 의 저주...)
오묘한 날씨 덕에 보라색 하늘을 다시 한번 볼 수 있었고, 오늘 하루는 4월에 눈이라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의미있는 하루였다. 오랜만에 포근한 떨어지는 눈 사이에서 뛰어놀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