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 01, 2024 | 맨발 하이킹 (Appenzell)
ESN Zurich 에서 주최한 맨발 하이킹을 왔다. 예전에 왔었던 Appenzell 이지만, 또 맨발로 등산 하는 경험은 색다를 것 같고 또 쉽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참여하게 되었다.
또, Appenzell 현지인 분이 함께 동행하셔서 마을에 아펜젤 칸톤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스위스의 26개의 칸톤 중 가장 인구수가 적고, 또한 보수적인 동네라고 한다. 또한 가장 스위스 스러운 마을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6월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산에는 눈이 쌓여 있고, 산 중턱까지는 드넓게 깔린 잔디밭과, 스위스의 목조주택, 그리고 자유롭게 풀을 뜯는 소가 즐비한다. 인구수가 3천명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투표를 할일이 있을 때 다같이 모여 거수를 하는 방식을 사용한다고 한다. 또한 보수적인 동네 답게 여성의 참정권이 가장 늦게 주어진 칸톤이라고 한다.
예전에 왔을 때 기차를 타고 지나친 놀이터 앞 기차역에 내렸다.
이곳에서부터 신발을 벗고 트래킹을 시작했는데, 이날까지도 비가 내려서 굉장히 추웠다. 발도 추운데 몸도 비에 젖으면 몸이 버티기 힘들 것 같아서 우산을 썼지만 맨발로 하이킹을 하는 기행을 벌였다. 맨발로 다닐 수 있도록 자갈길, 모래길, 흙길, 잔디밭길이 다양하게 있었다. 흙길은 비가 와서 진흙탕이 되어 부드러웠고, 잔디밭길은 워낙 걷기 편했는데, 자갈길과 모래길을 걸을 때는 발가죽이 뚫리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발에서 피가 나지는 않았지만, 날카로운 돌조각을 밟고 올라섰을 때 내 발바닥이 얼마나 나약한지 느낄 수 있었다.
며칠 전에 봤던 대로 달팽이도 정말 많았는데, 길 위에, 그리고 산책로 옆 잔디에 달팽이가 정말 한걸음 걸을 때마다 한마리 씩 있을 정도로 많았다. 달팽이가 살기 좋은 동네인가보다. 진짜 생각 없이 다니면 하루에 10마리는 기본으로 밟을 것 같으니 달팽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주의하길 바란다.
산책로 사이에 중장비들이 단체로 줄지어 있고, 아이들이 부모들과 함께 뛰어놀고 있길래 무슨 일인가 싶었다. 네덜란드에서 온 친구한테 들어보니 네덜란드에서는 챔피언스 리그 결승 날에 트럭들이 줄지어서 경적을 빵빵 거리면서 퍼레이드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것도 비슷한 것이지 않을까라는 추측을 했었다. 걷다가 중간 중간에 뒤쳐진 일행을 기다리면서 쉬면서 갔는데, 아저씨들이 버스 경적으로 아기상어와 행진곡을 연주했다. 어떻게 한건지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신기했다. 연습용으로 한건지 1절만 연주해서 녹음을 할 타이밍을 계속 놓쳤다.
그렇게 하이킹은 계속 이어지고,
풀숲에 숨어있는 (사실 대놓고 있는) 수많은 달팽이들을 피해 조심조심 걸었다.
이 길이 진짜 쌉 레전드였는데, 며칠새 비가 와서 무릎까지 닿는 물웅덩이가 고여 있었다. 이정도만 하면 발 세척 이벤트라 생각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건너갈 수 있었겠지만, 앞에 가던 친구가 파란색 줄에 닿아 감전이 됐다고 조심하라고 했다. 파란 줄을 잡았는데 순간의 기억이 사라졌다고 한다. 자세히 보니 파란 줄에 철사가 박혀 있고, 고압전류를 흘려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감전되기는 싫어서 조심조심히 갔는데 물웅덩이 바로 앞에서 쭉 미끄러져 넘어져버렸다. 하필 울타리 쪽인 왼쪽으로 넘어져버려서 손은 바닥을 짚고 다리는 파란 줄에 걸려버렸다. 순간 아무 생각이 안나고 아 넘어졌네 바지에 진흙 묻었겠다 싶었다. 한 1초 뒤에 팔이랑 다리 근육이 뚝 하면서 강하게 수축했다. 다행히 친구들이 내가 넘어지자마자 앞뒤에서 바로 일으켜줘서 전기가 오래 통하지는 않았는데, 순간 감전됐따는 생각에 너무 소름이 돋았다. 전기가 왼쪽 팔다리를 타고 흘러서 좀만 늦게 일으켜세워줬으면 심장에도 영향이 갔을 것 같다.
그 뒤로 나는 무서워서 웅덩이를 빨리 달려가고, 내가 넘어졌을 때 붙잡아줬던 친구 두명이 곧이어 울타리로 넘어져서 감전됐다. ㅋㅋㅋ 그래서 내 앞에 가던 친구 한명, 나, 그리고 내 뒤에 오던 친구 2명이 내리 감전이 되어서 명예로운 업적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산책로 울타리에 전기선을 설치한 집주인이 괜히 짖궂게 느껴졌다.
웅덩이가 무서워서 일찍 달려왔다. 그래서 뒤에 일행이 오기까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앞에 있는 친구가 사진을 찍어준다고 해서 감전의 위협을 무릅쓰고 다시 웅덩이로 들어가 컨셉 사진을 찍었다. (혼자 있을 때 넘어져서 감전되면 일으켜줄 사람도 없다.)
맨발 하이킹 영상
https://youtube.com/shorts/S5mrWwNAdfg
중간에 오두막 같은 공간이 있어서 잠깐 쉬면서 점심도 먹고, 주최 학생들이 준비한 피크닉 간식들을 먹기로 했다.
가는길에 귀여운 고양이들이 다가왔는데, 몇번 쓰다듬어 주니까 만족했는지 가버렸다.
처음 트래킹을 시작하기 전에 아펜젤에 사는 친구가 알디에서 사온 음식을 두박스인가 챙겨왔다. 그걸 각자 가방에 나눠담고 다시 꺼내서 나눠 먹었다. 부모님이 마트에서 일하고 계신다고 했나 그런지 정말 양이 무지막지했다. (사진에 나온 건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각종 치즈에, 수많은 빵 덩이, 블루베리, 라즈베리, 블랙베리 3팩씩, 토마토와 오이, 사과 2팩 등 다양하게 있었다. 원래 더 많은 사람이 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비가 오는 관계로 당일 오전에 취소한 사람들이 많아서 음식이 사람 수에 비해 많다고 했다. 그래서 한참을 먹었는데도 엄청 남았다.
간식 먹다가 갑자기 출동안 트럭 행렬
https://youtube.com/shorts/nDxXHGPDruw
하이킹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역에서 기다리는 동안에 마을 교회에서 종이 무슨 6분도 넘게 울렸는데, 마을마다 울리는 종의 패턴이 다르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는 아침 8시와 5시에, 그리고 15분 마다 이제 일을 시작해야겠다, 일을 마무리하고 집을 가야겠다는 의미로 우리는 종이라고 한다. 또, 교회에서 예배와 같은 행사가 시작하기 전에 종을 쳐서 사람들을 모은다고 한다. 역시 개신교의 발상지라 그런지 마을에서 교회가 가지는 의미가 큰 것 같다.
단돈 11 프랑만 낸 것 같은데, 저렴한 가격으로 아펜젤에도 오고, 피크닉 간식도 풍족하게 먹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SBB 기차 좌석 예약도 해둬서 정말 편하게 올 수 있었다. 예약석에 앉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가는길에 귀여운 강아지도 있어서 열심히 쓰다듬어줬다. 역시 고양이보단 강아지다.
같은 기숙사에 사는 친구가 오늘 저녁에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 있다고 게임을 같이 볼거냐고 물어봐서 일찍 도착하면 같이 보겠다고 했다. 오고 보니까 샌드위치랑 치킨을 잔뜩 준비해뒀다. 시험기간이라고 했는데 너무 미안했다. 마요네즈도 손으로 하루종일 저어서 수제로 만들었다고 했다. 정말 맛있었다.
독일 도르트문트랑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와의 경기였는데, 경기 결과는 레알 마드리드가 2대 0으로 승리했다. 스페인 애들도 몇명 있었는데, 대부분이 독일계 친구들이라 그런지 경기 이후에는 탄성만 가득했다. 도르트문트를 광적으로 응원하는 내 친구는 (요리해준 친구) 거의 울 지경이었다. 게임이 끝나고 나서 잠깐 시간을 달라고 했는데, 저쪽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서 동생이랑 거의 울듯이 통화를 했다. 유럽 애들은 축구에 진심이구나 라는 것을 느꼈다. (심지어 soccer 이라고 하면 화냄.)
아무튼 알차고 보람찬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