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 17, 2024 | 생모리츠 Saint. Moritz
오늘의 원래 계획은 스위스 Arosa 로 등산을 가기로 했는데, 날씨가 좋지 않아서 중간 역에서 Saint Moritz 로 갈아타는 빠른 결정을 내렸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생모리츠는 구름이 적당하면서 푸른 하늘이 보이는 너무 좋은 날씨였고,눈이 적당히 내려 있어서 정말 겨울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장소였다.
기차로 생모리츠로 가는 길이 정말 절경이었는데, Chur 에서 환승해서 각 알프스 지역으로 뻗어가는 기차들은 창문이 위아래로 통으로 달려서 주변 경치를 바닥부터 하늘까지 감상할 수 있고, 산의 중턱을 따라 길을 만들어 기차가 다닌다. 바닥 아래로 보이는 절벽과 하늘 위로 보이는 뾰족한 산들이 절경을 이룬다. 또한 산 사이를 잇는 아치형의 다리도 상당히 자연과 잘 어울리는데, 그 기차길이 지나가는아치형 다리 자체가 유네스코 자연 유산이라고 기차 방송으로 알려준다. 또 신기한 점은 기차에서 창문을 열 수 있는데, 달리는 기차에서 높은 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시원한 바람을 맞을 수도 있고, 경치를 더 생생하게 구경할 수 있다.
생모리츠에 거의 다 다다랐을 때, 캐나다에 온 것처럼 눈이 가득 쌓인 숲길 사이로 기차가 자나가고 있었다. 또 기찻길 바로 옆으로 걷는사람, 스키타는 사람들도 지나가고, 애기들이 말이 끌어주는 마차를 타고 눈 사이를 지나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정말 도착하기도 전에 멋진 광경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생모리츠 기찻길 (1)
https://youtube.com/shorts/JZKv8sVxMTk
생모리츠 기찻길 (2)
https://youtube.com/shorts/kdijtGDYOag
도착하자마자 눈이 가득한 마을과 머리가 하얗게 쌓인 산봉우리들을 볼 수 있었다. 스키 명소답게 기차역 몇 정거장 전부터 스키를 타는 사람들도 정말 많았고, 마을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스키 리조트처럼 보였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산의 경치는 초광각 카메라로도 담기 힘들만큼 커다랗고 예뻤다.
다래 보이는 마을같아 보이는 곳은 사실 호수인데, 얼어붙은 커다란 호수 위에 텐트같은 구조물을 설치해서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날씨가 상당히 따뜻해서 호수가 녹으면 어떡할까 걱정을 했는데, 올림픽도 열었던 장소라고 하니 안심하고 즐겼다.
호수 위에는 오두막도 지어두고 레스토랑도 운영하고 있었고, 얼음을 조금 깎아 반질반질하게 만든 아이스 링크장도 있고, 자동차 회사들이 차를 세워두고 자동차 홍보도 하고 있었다. 자랑스러운 현대의 제네시스가 후원사로써 여기저기 제네시스의 로고가 박혀 있었다.
얼마 뒤에는 커다란 호수 위에 경마 트랙이 있어서 애기들의 조랑말을 타고 경마를 하는 장면도 구경했다. 이탈리아어로(?) 중계를 해서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응원하던 애기가 우승한 것 같았다. 아무튼 호수 위에서 이런 다양한 행사를 한다는게 신기했다.
여기저기 사얗게 쌓인 눈이 햇빛을 너무 잘 반사해서 눈이 부셔서 눈을 제대로 뜰 수 없긴 했었다. 스위스에서 눈덮인 지역을 가려면 썬글라스를 준비해와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이후에 산을 돌아다니면서 원래 목적이었던 산행을 이어갔는데, 너무나 예쁜 장소가 많았다. 실제로 가장자리에 호수가 조금 녹아 있었는데 그 위에 비친 하늘과 산의 모습은 우유니 사막도 부럽지 않았다.
호수 위에도 눈이 잔뜩 쌓여서 눈던지기도 많이 하고 눈싸움도 하고 눈에서 할 수 있는 스포츠는 죄다 즐겼던 것 같다. 눈이 상당히 두터워서 조금만 노력해도 커다란 눈덩이를 만들기 쉬웠고, 어느 순간에는 모두가 눈덩이를 만들기 위해 눈을 굴리고 있었다. 아래 사진에서 불가사리처럼 누워있는게 나다. 무방비 상태로 경치를 즐기고 있더니 조금 후에 눈덩이가 날아왔다. 눈을 굴려서 팔다리가 달린 눈사람도 만들어주고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이것보다 좋은 장소가 있기가 힘들 정도로 행복했다.
원래 이곳에 온 목적은 등산이었기 때문에, 눈이 쌓여서 멀리는 못가더라도 조금 위에 위치한 다음 호수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애기들이 눈이 쌓인 언덕 위에서 썰매를 타고 있길래 너무 재밌어보여서 따라서 올라가보려 했지만 몸무게가 무거운 우리로서는 깊게 쌓인 눈을 밟고 올라갈 수가 없었다. 사타구니까지 발이 푹푹 빠져서 도저히 올라갈 수가 없어서 썰매는 어쩔수 없이 포기하고야 말았다.
정말 아름다운 광경을 봤을 때 공들인 사진을 찍어야 나중에 추억을 회상하기도 좋고 사진 관리도 어렵지 않을텐데, 앞을 보나 뒤를 보나 어디나 너무 예쁜 광경만 이어져서 사진을 그만 찍을 수가 없었다. 한국인의 숙명인가보다.
세인트 모리츠 트래킹
https://youtube.com/shorts/5hScSxzO5Pg
뒤늦게 깨달았는데, 사실 우리가 가는 길은 전부 스키 코스였다. 여기저기 하얗게 덮인 산에서 출발해서 마을과 여러 호수로 스키 코스가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는 것이었다. 스키장 규모가 거의 마을 급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신기했다. 또 호수 주변으로 육상 트랙처럼 만들어져 있는 슬로프도 있었는데, 그 위에서 사람들이 스케이팅을 타듯이 스키를 타고 가속해서 트랙을 따라 질주하는것도 볼 수 있었다.
가는 길에 심심하지 않게 대만 친구가 알려준 게임도 했는데 생소한 나로서는 조금 어려웠다. 이야기의 주제를 하나 받고 이야기에 관련된 예, 아니오 퀴즈를 계속해서 던지면서 전체 이야기를 완성해서 맞추는 게임이었다. 장님이 생일파티가 끝나고 모두를 죽였다는 이야기였는데 한달 뒤에 일기를 쓰는거라 이야기가 잘 기억이 안난다.
위의 호수를 구경하고 산길을 따라 내려와 근처에 있는 다른 정거장으로 이동했다. 아래 마을까지 내려가는 구불구불한 등산로들이 모두 스키 코스로 쓸 수 있는 길이었고, 이러한 규모의 스키장과 자연을 그대로 활용한 스키장이라 인상깊었다. 여기에 언젠가 다시 한번 와서 2박 3일 정도 스키를 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Celerina 라는 정거장에 도착해서 다시 기차를 타고 취리히로 돌아갔다. 짧지만 아름다웠고, 인상깊은 여행이었다. 기차를 타고 마을에 도착하기 전부터 보이는 광경을 보고 감동해서 그것만을 보러 또 올 의향이 있었다. 이탈리아어권 구역이라 취리히에서 거리는 좀 있지만, 기차 여행 자체도 여행이 아닌가.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