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벽화점 2024. 3. 4. 09:22

스위스에서 겪었던 가장 좋은 경험 중 하나인데, 어떻게 이 행복한 감정을 표현하려니 부담이 돼서 3주가 넘게 미뤄뒀다. 학기중이라 바쁘지만 더 잊혀지기 전에 빠르게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날 비어퐁을 마치고 1시쯤 잠들었는데, 기적적으로 새벽 5시에 일어나서 5시 20분 언저리 기차를 탔다. (사실 알람도 못듣고 못일어나서 호준이가 깨우러 와줬다.) 전날에 혹시 몰라 짐을 미리 싸둬서 다행이었다. 해가 뜨기도 전에 출발했는데, 체르마트까지 가는길이 한 3시간 반 정도 걸려서 가는길에 일출도 볼 수 있었다. 운이 좋게도 옛날에 봤었던 금붕어 어항 구름을 다시 볼 수 있었고, 거대한 하얀 융프라우 산맥을 향해 기차가 달려가고 있었다.

 

융프라우행 기차

https://youtu.be/z03ImAdt3ag

 

체르마트에 도착하니 9시 가량 되는 시간이었고, 스키 패스를 구매하고 마테호른을 보러 10시 정도에 고르너그라트 정상까지 올라가는 기차에 탑승했다. 체르마트 마을에서 겨울 유럽 마을 느낌이 나는 풍경으로 사진도 찍고, 스키를 타러가기 전에 화장실도 다녀오고, 마트에서 점심거리도 사고, 혹시 모르니 보관함에 노트북도 넣어두는 등 만발의 준비를 했다. 마을에서도 거대한 봉우리의 마테호른이 보였는데 날씨가 정말 좋아서 감동적이었다.

 

 

역시 여행잘알 한국인의 블로그대로 마테호른으로 올라가는 산악열차에서는 오른쪽 좌석에 앉아 올라가는 길 내내 창밖으로 마테호른을 구경할 수 있었다. 어느정도 고도에 오르자 거대한 스키장이 쫙 펼쳐졌는데 이 순간부터 스위스에서 이런 배경에서 스키를 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했다.

 

 

고르너그라트행 산악열차

https://youtube.com/shorts/zKLF1n2LDOI

 

날씨 좋은 날의 마테호른

https://youtu.be/sfM3R1QATDo

 

올라가서 좋은 추억은 역시 사진으로 남긴다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사진을 정말 많이 찍어댔다.

 

마테호른 국룰 사진

 

마테호른 거울샷 (검은 벽인데 햇빛이 밝아서 거울보다 거울같음)

 

다양한 포즈로 사진도 찍고

 

렛잇고 찍겠다고 까불다가 눈이 너무 차가워서 고통받고 있는 나

 

12시가 다 되어서 스키 장비를 갖추고 슬슬 슬로프로 내려갔다. 사실 고르너그라트에서는 스키를 안타면 별로 할게 없는 것 같았다. 기차역이 곳곳에 있지만 대부분의 면적은 스키장이 차지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스키 슬로프가 기차역은 물론이고 마테호른 주변으로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었다. 따라서 기차타고 전망대에서 구경하는것보다 스키를 타면서 마테호른을 보는게 더 가깝고, 웅장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스키를 그닥 잘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마테호른 스키장은 경사가 상당히 완만해서 그냥 마음 편히 탈 수 있었다. 심지어 이날 눈 상태도 너무 좋았다. 파우더리 스노우라 방향을 전환하거나 속도를 전환할 때 눈이 사악 하면서 스프레이 형태로 뿌려지며 원하는대로 컨트롤 할 수 있었고, 눈이 너무 깊어서 스노우 덤프가 생기거나 눈이 녹았다 얼어서 생긴 얼음도 없었다. 적당히 단단하고 적당한 두께의 눈이 가루 형태로 쌓여 있어서 힘을 하나도 들이지 않고 탈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고르너그라트가 해발고도 3,100m 보다 높게 있어서 영하 10도 정도로 굉장히 추웠지만 그만큼 눈 상태가 훌륭하게 유지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슬로프가 너무 쉬워서 한손에 폴이랑 스키장갑을 모두 들고 다른 한손으로 영상을 촬영하면서 내려가는것도 시도해봤다. 슬로프도 워낙 넓고 스키 리조트가 거대해 사람 밀집도도 거의 없어서 사람 신경도 거의 안쓰고 편안하게 원하는 경로로 내려올 수 있었다. 

 

 

고르너그라트 스키장

 

스키 슬로프에서 감상하는 마테호른

 

마테호른 슬로프 

https://youtube.com/shorts/FHCA5INYKPk

 

나도 타봤다 체르마트 스키!

https://www.youtube.com/shorts/LuuwygIfMJY

 

블루 슬로프를 몇번 타고 내려와서 중간에 있는 카페에서 잠깐 쉬었다. 마테호른은 어디에서 보던지 정말 훌륭했다. 저렇게 높은 산 주변에 아무런 산이 없다는것도 신기하고, 산이 어떻게 저렇게 예리하게 깎여있는지도 궁금하고, 마테호른 근처에 평원을 따라 스키장을 지은 것도 신기했다. 무엇보다도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서 마테호른을 감상하면서 스포츠를 즐기기에 너무 이상적이었다. 

 

 

친구들이랑 다같이 모여서 신라면도 먹고 간식도 먹고 하면서 좀 쉬다보니까 불과 한시간 전까지만 해도 쨍하게 파랗던 금방 하늘 색이 바래버렸다. 온 세상의 색을 모조리 빼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이것 또한 신비로웠다. 마테호른 왼쪽으로 저 멀리서 구름인지 눈사태인지 분간이 안되는 거대한 흰색 덩어리가 점차적으로 넘어오는게 보였다. 조금 무섭긴 했지만 경고를 안하는걸 보니 구름인가보다 하고 계속 스키를 탔다.

 

 

 

오후에는 자신감이 붙어서 레드 슬로프에 도전했다. 사실 Pizol 에서 레드 슬로프를 타기도 했거니와 리프트를 타고 올라오면서 봤을 때 레드 슬로프가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몇번 타보고 영상 찍으면서 내려오는것도 시도해봤다. 물론 잘 탔다고 말하기나 어렵지만,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서 원테이크로 출발점부터 리프트 출발점까지 쭉 내려올 수 있었다.

 

체르마트 레드 슬로프 촬영 도전

https://youtu.be/yDqxg7QrixA

 

4시쯤 되니 해가 내려가서 어둑해지고 사람들도 많이 빠져서 슬슬 정리하고 내려올 생각이었다. 점심에 쉬었던 오두막집에서 스키 장비를 정리하고 기차를 탈 준비를 했다.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체르마트에 온 온갖 생색을 내고 싶어서 눈오리도 만들고 사진도 많이 찍고 내려왔다.

 

스키를 마치고 마테호른 옆에서 휴식하는 낭만

https://youtu.be/nM2JeDiDNZI

 

 

정말 이상적인 하루였다. 맑은 하늘의 마테호른을 보기 쉽지 않다는데 다행히도 오늘은 정말 날씨가 좋았다. 며칠 전 눈이 왔는지 슬로프의 상태도 적당한 두께의 파우더리 스노우가 깔려 있어서 스키를 타기도 적당했고, 스키장의 기온도 좀 차갑긴 했지만 스키를 타기에 너무나 쾌적했다. 무엇보다도 슬로프도 어렵지 않아서 스키장에서 본 경치를 영상으로 찍을 수도 있었다. 또한 구름이 낀 오묘한 하늘의 마테호른도 볼 수 있었다.

 

아침의 황금호른과 저녁의 핑크호른을 보지 못한건 조금 아쉽긴 하지만 또 다시 찾아올 날을 기약하며 행복한 기억을 오래 가져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