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 03, 2024 | 부활절 여행 - 영국 (5)
드디어 영국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 점심에 세븐 시스터즈로 출발하기로 했다. 원래 내가 정말 가고 싶었던 장소였는데, 내가 박물관이나 건축물보다는 자연경관을 좋아한다. 그래서 영국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평소에 보기 쉽지 않은 거대한 자연경관인 도버의 안벽을 보러 가고 싶었다. 사실 세븐 시스터즈와 도버의 안벽이 다른 장소였다는 사실을 이틀 전에 깨달았다. 그래도 둘다 석회로 이루어진 백안 절벽이라는 사실은 같으니까 비슷한 광경이겠거니 하고 세븐 시스터즈로 가기로 결정이 됐다. 런던에서 거리는 멀지만 뷰도 이쁘기도 하고, 도버의 안벽은 나중에 프랑스에서 영국 국경을 오갈 때 볼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래서 이날 오전에 빠르게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정복하고 세븐 시스터즈 백악절벽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나는 그것보다 빠르게 일어나서 급하게 한인 마트에서 장을 보고, (거의 한국 가격이랑 비슷할 정도로 영국 한인 마트의 가격은 저렴했다!) 웨스트 민스터 사원으로 이동했다. 가는길에 트라팔가 광장도 있어서 사람들이 시간을 때우는 걸 구경할 수 있었지만, 나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심지어 이 앞에 있는 내셔널 갤러리도 시간상 못갔다. :/
드디어 웨스트 민스터 사원에 도착했다. 빅밴 바로 옆에 있는 사원인데, 항상 마주쳐 지나가기만 했지 들어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영국의 각종 유명인사들과 왕과 귀족, 많은 과학자들이 묻혀 있는 사원으로 유명하다. 대표적으로 아이작 뉴턴, 스티븐 호킹, 찰스 다윈으 묘가 여기에 안치되어 있다. 다른 여러 저명한 과학자들 또한 있었다.
웨스트 민스터 사원은 지금까지 봤던 여느 교회나 성당보다 화려하고 웅장했다. 사람도 바글바글 많았고, 실제로 미사를 하는데 사용하고 있는 성당이라고 한다. (내가 방문할 때 실제로 미사가 열리고 있었다.) 이곳의 의의는, 정말 많은 영국 왕실과 귀족들의 묘가 있으며, 영국에서 순교자로 인정한 많은 사람들의 묘가 안치되어 있었다. 또한 예전에 영국의 왕 또는 여왕이 취임을 하는 곳이기도 했다.
사실 이러한 정보들은 영국의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면 관심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곳에 안치되어있는 영국 왕과 여왕의 이름을 들어도 알고 있는 사람이 빅토리아 여왕이나, 엘리자베스 1세 정도밖에 없어서 사실 별 감흥은 없었다. 과학자 찾기에 열중하는게 더 나았을 것도 같았다.
웨스터 민스터 사원의 어느 한 곳에서
https://youtube.com/shorts/vDTrMiWhmww
정말 가도 가도 공간이 또 있는 초 초 거대 사원이었는데, 사람도 많고 미사도 진행중이서 정신이 없어가지고 빨리 나가고 싶었다. 나중에 시간 되면 또 오지 않을까 싶다. 사원 곳곳에 예배당이나, 지하 동굴 예배당도 배치되어 있는 걸 보면 정말 신성한 장소인것 같으면서도 어느 공간을 보면, 왕권을 지탱하는 여러 가문의 깃발을 달아놓는 등 왕실의 권위를 나타내는 공간으로도 쓰이는 것 같아서 종교나 정치 사실 어느 한쪽에 의의를 두기 어려운 장소인 것 같다.
이곳저곳을 감상하고 조각상들을 감상하느라, 막상 재미있는 컨텐츠인 과학자 찾기에 집중하지 못했는데, 같이 갔던 민석이 형은 여러 과학자들의 묘지를 찾은 것 같았다. 아래 사진은 이곳에 안치된 제일 저명한 과학자인 아이작 뉴턴의 묘이다. 이런 식으로 진화론의 찰스 로버트 다윈, 블랙홀 이론의 스티븐 호킹, 양자역학의 폴 디랙, 전자기학의 마이클 패러데이, 제임스 클럭 맥스웰, 또 양자역학의 윌리엄 톰슨, 수학자 조지 그린 등이 있었다. 내가 찍은 사진이 아니기도 하고 다 올리기에 플랫폼이 버거워해서 나중에 방문할 계획이 있으면 꼭 찾아보는 컨텐츠를 해보길 바란다. (사람만 적으면 재밌을 것 같다.)
이제 드디어 기차를 타고 2시간 넘게 이동해서 이스트본에 도착했다. 갈매기가 사람들 지나다니는데 비둘기마냥 당당하게 걸어다니길래 신기해서찍었다.
이스트본역 갈매기
https://youtube.com/shorts/pk46ff3-1ic
나무위키의 추천대로 조금 버스를 타고 이스트딘까지 간 다음 걸어서 세븐시스터즈까지 가는 경로를 택했다. 도중에 정거장을 하나 더 가서 조금 고생하긴 했지만, 가는 길에 영국 시골 마을의 풍경과 광활한 목장을 볼 수 있어서 그럴 가치가 있었다. 진짜 광활한 초원에서 보는 양 목장의 풍경은 너무나도 신기했다. 영상은 돌아올때 버스에서 찍은 거긴 한데 이런 풍경을 계속 보면서 걸을 수 있었다.
이스트딘 양떼 목장
절벽에 가까워져서 해안이 보이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초강력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하체 근력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걸어다닐 때 휘청거렸다. 진짜 모자가 날아갈 것 같고 바로 앞에서 말하는 목소리도 잘 안들릴 정도였다. 이제서야 산과 언덕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평원만 있으면 바람이 진짜 말도 안되게 세고 끊임없이 분다.
드디어 세븐 시스터즈에 도착했다. 바람이 굉장히 많이 불었고, 스위스에만 살다가 오래간만에 보는 바닷가라 기분은 좋았다. 저 멀리 솟은 백악절벽도 상당히 아름다웠다. 날이 갈수록 침식돼서 색깔을 잃어버린다고 하길래 지금 많이 보고 즐겨야 했다.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사진 찍을 때마다 정신을 못차리긴 했다. 사진 색이 다른 건 아이폰, 갤럭시 색감 차이이다. (내가 나온 사진이 갤럭시)
세븐 시스터즈 절벽
절벽을 보면 곳곳에 이런 길게 쭉 이어진 화성암 층이 있었는데, 바다 밑에서 석회로 이루어진 퇴적층이 형성될때 근처에서 화산 활동이 있었던 증거라고 생각해 보았다. 이 사실을 발견했을 때, 나름 영재학교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아닌가?) 또한 이 절벽이 오랜 퇴적으로 만들어진 층이라 암모나이트 같은 화석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해안이라고 한다.
절벽에서 사진도 찍고, 절벽 곳곳에 무너져내린 곳이 있어서 거기서 석회암을 주워서 곳곳에 그림을 그렸다. 사실 이 벽이 그 자체로 거대 분필이다. (Chalk Cliffs) 이미 벽에 낙서가 많이 있긴 했는데, 차마 그런 어글리한 짓을 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고, 조약돌에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놀았다.
완전 귀엽다.
절벽 위로 올라와서 경치를 좀더 구경하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서 다들 절벽에 걸터 앉아 보겠다고 해서 정말 무서웠다. 나무위키에서 읽은 바로는 60m 가 넘는 절벽인데 안전장치가 일체 설치되지 않아서 여기서 사진을 찍다가 낙사한 사람들이 매년 있다고 한다. (무사히 착지할 장소가 없어서 무조건 머리통이 깨져 즉사라고 함) 그럴 만도 한게 비가 와서 흙이 무뎌질 때 한발만 잘못 디뎌도 떨어지는거라 정말 무서운 장소긴 하다.
주영이는 그냥 대담하게 걸터앉아서 아래 보고 그러긴 했는데, 나나 나머지 친구들은 쫄보처럼 완전 포복자세보다 낮게 기어가서 잠깐 절벽 아래 보고 머리가 아찔해져서 돌아오고 그랬던 것 같다. 또 절벽 아래로 고개를 내밀면 상승 바람이 엄청 불어대서 또 정신을 못차린다. 그런데 주영이를 시작으로 돌아가면서 절벽에 걸터앉기를 시도했다. 처음에는 주영아 너 그러다가 진짜 뒤져 이렇게 말리다가, 돌아가면서 나도 할래 그러면서 걸터 앉더라. 일행 친구들이 막 절벽에 걸터앉아서 자꾸 꾸물꾸물 앞으로 가고, 팔다리를 들기도 하고 보는 내가 아찔해서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런데 나머지가 다 했는데 나만 안할수는 없어서, 안전이 검증된 장소에서 걸터앉아 사진을 찍었다. 다리를 절벽 아래로 내밀어서 바람이 굉장히 많이 불긴 했지만, 나름 몸을 팔로 지탱해 무게중심을 뒤로 옮겨서 안전하게 앉았다. (진짜 너무 무서웠다.)
힘든 여정을 마치고 다시 기차를 타고 런던으로 돌아와 패딩턴 역에서 마지막 피시앤 칩스를 먹었다. 영국 음식 중에 그나마 먹을만한 음식이라고는 하지만, 막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아서 이걸 마지막으로 또 먹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먹는 생선이라 좋았다.)
플릭스버스를 타고 벨기에로 향했다. 버스가 해저터널을 따라 가는게 아니라 페리를 타고 이동한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긴 했지만, 신기해서 기분은 좋았다. 도버 항구에서 영국 국경을 나갈 때 자꾸 버스에서 내리라고 해서 귀찮긴 했지만 신기한 경험이었다.
국경 심사대에서 여권을 확인하고 출국 심사를 한 뒤에 버스에 탑승하고, 결국 버스가 페리에 탔다. 페리에 탄 버스를 타고 프랑스로 넘어가는 건가 싶었는데, 페리 안에서는 버스 안에 있을 수 없대서 배 안으로 이동해서 프랑스에 도착할 때까지 2시간 정도를 선내에서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와이파이도 잘되고, 공간도 넓고, 사람도 한적하고, 냄새도 안나고, 심지어 누울 수도 있어서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도버 해협을 건널 때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어서 데크로 나가서 구경을 했는데, 비도 많이 오고 갑판도 미끄럽고 배도 자꾸 흔들려서, 핸드폰을 떨어뜨릴까봐 조마조마했다. 아래에 데크 하나 더 있는게 아니라 바로 거센 파도가 이는 바다여서 난간 가까이 길때는 진짜 무서웠다.
도버 해협을 건너는 플릭스버스를 태운 페리
https://youtube.com/shorts/h2MSvrjjPZ0
사실 이때 넷플릭스로 바이오하자드를 보고 있었는데, 반쯤 눈을 감고 보고 있어서 그냥 겉옷으로 가리고 있었다. (이와중에 옷 사이로 보이는 틈으로 짐을 지키고 있었음) 사람들이 다들 내릴 때쯤 민석이형이 깨워줘서, 자고 있진 않았지만 다행히 비몽사몽한 정신을 차리고 버스로 돌아갔다. 벨기에에 갈때까지 한 4시간 동안 잠을 잤는데 잠의 질이 좋지 않아서 그런지 굉장히 피곤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