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 10, 2024 | 스시 나이트, 냉장고 중고거래
LCK 스프링 결승 시즌이라 아침부터 경기 하이라이트 영상을 봤는데, T1 을 3대 0 으로 이겨버린 한화생명에 대해서 "주황젠지... 젠장 왜 두개로 나눠져서 괴롭히는 거야" 라는 표현이 너무 재밌었다.
T1 이 재작년부터 젠지라는 팀과의 경기에서 천적 급으로 경기가 말리는 모습을 보였다. 올해 젠지가 반으로 쪼개져서 젠지의 본체인 쵸비와 페이즈는 팀에 남고, 선수 3명이 한화생명으로 이적했다. 멤버는 많이 바꼈지만 티원을 잡아먹던 시절을 기억하는지 제대로 압살해버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또 한국에서 열리는 이벤트 중에 역대급으로 큰게 있었다. 요즘 너무 도파민에 찌들어 사는게 아닐까 싶다.
한국은 저녁일때 스위스는 아침이라 개표 방송을 점심 쯤부터 볼 수 있었는데, 개표 방송이 너무 재밌어서 수업시간에도 집중을 못하고 개표 현황만 봤던 것 같다. 한국의 정치색이 동서로 나뉘어버린 것 같아서 남북의 분열, 동서의 분열, 남녀의 분열, 세대간 분열 등 한국의 상황을 잘 나타내 주는 것 같아서 인상깊었다.
오늘도 Polymesse 가 열리는데, 오늘 오는 기업 중 유명한 기업은 IBM, Hwawei, UBS, Swiss Air, Novatis 정도가 있었다.
오늘 같이 양자역학을 듣는 친구 중 한명이 스위스 뱅크에서 텀블러를 받아보겠다고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한 것 같았다. 스위스 에어 부스에서 상담을 했는데, 직원이 편하게 기념품 가져가라고 해서, 눈치가 보여서 부담 없이 가져가기 편한 초콜릿을 챙겨서 나눠먹었다. 당돌하게 노트나 담요 같은 걸 집어올 걸 그랬다.
양자역학 수업이 끝나고 곧바로 기계과 학생회에서 주최한 Sushi Night, 스시 만들기 행사가 있었는데, 막상 가보니 김밥이여서 살짝 실망이었다. CHF 15 (약 22,500 원) 의 거금을 들여 스시를 만들어 먹으러 갔는데, 고작 김밥이라니 살짝 아쉬웠다. 근데 여기 애들은 김밥이라기 보다는 마키 스시라고 부르며 일본 음식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김에는 참기름이 안 발려 있지, 밥은 딱딱하지, 재료는 사람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서 막 그렇게 기대하진 않았다. 그래도 맥주랑 음료가 무한리필인 점은 다행이었다. 다른 사람들 서로 떠들면서 놀 때 조용히 김밥 3줄을 말아서 먹었다. 음료도 계속 리필하고, 마지막에 가방에 한병도 챙겨서 어떻게든 2만원이 넘는 거금의 본전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한국에서는 이정도 먹어도 만원도 안나올듯)
마키 스시 친구한테 정신이 팔려서 7시 30분에 만나기로 했던 냉장고 거래 약속에 한참 늦어버렸다. 미리 메일은 해서 다행이지만 해가 거의 다 떨어져버렸다. Dietikon 근처의 Baltenschwilerstrasse 동네였다. 중고거래 앱에서 복사 기능이 안돼서 저번에 Waltenschwilerstrasse 로 잘못 찾아가 하루를 날렸던 추억이 있는 곳이다. 하늘에 구름이 넓게 깔리고, 산 너머로 구름으로 가려지지 않은 부분에 노을이 지는 모습도 신비로웠다.
이 동네 지형도 신기했던 게 여러개의 산이 일자로 쭉 주름처럼 늘어져있고, 그 주름 사이 계곡에 비탈면을 따라 마을이 자리해 있었다. 그리고 계곡을 기준으로 마을이 분리되었다. 그래서 마을을 연결하는 기차나 버스는 골을 따라 지나가지 못하니까 한참 돌아서 가고, 사람들은 계곡을 따라 내려갔다 반대쪽 비탈면의 마을로 다시 올라올 수 있었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시간을 맞추기 위해 언덕을 따라 쭉 달려 내려가고 언덕을 따라 다시 쭉 달려 올라왔다는 푸념을 하고 싶었다.
계곡쪽에 공원도 여러개 조성되어 있는데, 길 바로 옆에 나 캠핑장! 하고 떡하니 그릴과 캠핑 사이트가 있었다. 나중에 친구들이랑 여기로 여름에 휴양 와도 재밌을 것 같다.
냉장고 중고거래 하러 가는 길 Baltenschwilerstrasse
중고거래 하시는 분은 문신을 하고 덩치가 있는 좀 무서운 분이었는데, '냉장고 확인해 볼래?' 하면서 무슨 창고로 들어가 전원도 꼽아서 보여주고, '내가 영어를 잘 못해 미안해 헤헤' 하면서 열심히 설명해주시는 귀여운 분이었다. 3개월 전에 구매해서 가게에서 쓰다가 더이상 가게를 운영하지 않아서 창고에 넣어둔 꽤나 새 제품이었다.
서로 언어가 잘 통하지 않는데도 돌아가는 길까지 알아봐주고 상당히 좋은 분이었다. 기차를 타려면 또 반대쪽 비탈길로 넘어가야 하지만 냉장고를 들고 뛸순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타고 돌아가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이 어디에 있는지 집 앞까지 나와서 친절히 설명해주셔서 안 탈 수가 없기도 했었다.) 배차 간격은 충격적이었지만 그래도 걷는것에 비해서 차가 압도적으로 빨라서 걸리는 시간은 비슷한 것 같았다.
기숙사에 있는 우체통 사이즈의 냉장고에서 졸업해 이제 원하는 만큼 우유도 보관하고,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고기도 보관 할 수 있어서 상당히 행복한 거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