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30. 10:31ㆍ역사서 2024년/3월의 기록 - 교환학생일기
아로자 스키 리조트로 스키를 타러 가게 되었다. 예전에 등산을 하러 가기로 했던 곳이기도 하고, 정말 많은 친구들이 아로자에 다녀 온 뒤에 경치가 너무 아름답다는 말을 많이 해서 정말 기대를 가득 안고 출발하게 되었다. 크게 지도 상의 왼쪽 산 동쪽의 아로자 마을 부근 슬로프와, 왼쪽 산의 서쪽으로 내려오는 슬로프, 오른쪽 산의 동쪽으로 내려오는 슬로프가 있었다.
같이 가는 친구 중 한명은 아로자 마을에서 스키 강습을 받아서 거기서 스키를 렌탈하고 오전에 시간을 아로자 마을에서 보낸다고 했고, 다른 한명의 친구도 아로자 마을에서 스키를 렌탈하기로 해서 시간상 오른쪽 산의 동쪽 슬로프로 내려오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쪽으로 내려오면 숲 사이를 가로지르면서 내려오는 슬로프가 있어서 가고 싶은 마음은 있었는데,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 인생은 기니까 나중에 스위스로 스키를 타러 올때 또 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엄청 아쉽지는 않았다.
어제 스키를 갈 파티를 열심히 모집해봤지만 스키를 같이 갈 수 있는 잘 모이지 않았다. 결국 3명이서 아로자 (Arosa) 로 스키를 타러 가게 되었다. 바젤을 경유해 산을 올라가기 전까지만 해도 날이 우중충하고 하늘이 구름에 가려 온통 회색 하늘밖에 찾아볼 수 없었는데, 산악기차가 산을 타고 고도를 높이잠 맑은 하늘이 드러났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날이 갑자기 좋아져서 스키를 타기 좋은 황경이 갖춰져 우리 모두 굉장히 들떠 있었다.
아로자행 기차여행
https://youtube.com/shorts/N3uEB_EPzbI?feature=share
열차가 고도를 어느정도 올라가자 마을과 선로 주변에 점점 눈이 쌓이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에는 눈이 깊게 덮인 마을에 도착했다. 같은 스위스 인데도 이렇게 풍경이 급격하게 바뀐다는 사실은 언제나 놀랍다.
아로자 스키 리조트에 막 도착했을 때는 마을 전체가 안개에 덮여 있었다. 구름 높이의 고도로 올라왔을 뿐더러 기차에서 봤을 때 우리가 향하는 방향에 구름이 가득 끼어 있었기도 했다. 다행히 조금 지나서 해가 강하게 내려쬐자 안개가 도착한지 10분 만에 모두 걷혀 버렸다.
일행 중 중국인 친구 한명은 스키 강습을 받는대서 먼저 헤어졌고, 핀란드 친구가 스키를 렌탈할 동안 리조트 마을에서 같이 기다려줬다.
아로자 스키 리조트
리프트를 타고 올라왔을 보이는 경치가 얼마나 예쁜지는 말 말할 필요도 없었다. 햇볓가 너무 좋아서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날 정도로 따뜻했고, 하늘은 굉장히 짙은 하늘색에 전날에 눈이 잔뜩 내려서 슬로프도 눈으로 가득 덮인 상태였다. 스키를 타기에 최적의 환경이라고 볼 수 있겠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하얀 눈과 저 멀리까지 솟은 봉우리들, 푸른 하늘과 발밑에 깔린 구름, 곳곳에 솟아 있는 침엽수들까지 모든 풍경이 완벽했다.
스키 슬로프 초반 구간
https://youtube.com/shorts/ea0WJ6lJIy8
포토 덤프는 정말 미안하지만, 모든 경치가 너무 예뻐서 어쩔수 없다. 수많은 사진 중에 엄선한 사진이니 그래도 한번씩은 봐주면 좋겠다. 리조트가 얼마나 거대하고 스키 타기에 이상적인 환경인지 직접 보여주고 싶다. 리조트가 커서 넓직한 슬로프에 비해 사람들도 별로 없어서 굉장히 쾌적하고, 산들한 바람과 따뜻한 햇빛은 스키를 타면서도 춥지도 덥지도 않게 만들어줬다.
사실 가면서 문제가 좀 있었다. 높은 고도에서는 눈이 파우더리 해서 정말 좋았지만, 아래쪽 슬로프에 다다르니 따뜻한 날씨에 눈이 좀 녹아서 미끄러웠다. 햇빛이 비치는 부분은 습기가 있는 눈이고, 햇빛이 구름에 잠깐 가려지면 다시 얼음으로 얼어버려서 썩 행복한 눈은 아니었다. 그래서 리프트를 타고 더 높은 슬로프로 올라가서 스키를 타기로 했다.
리프트를 타고 갈아타고 올라와서 왕곤돌라를 타고 산 반대쪽으로 넘어왔다. 산 꼭대기에는 분화구같이 생긴 분지가 형성이 되어 있었고, 다시 올라올 방법이 없어서 그런지 아무도 여기서 스키를 탄 자국이 보이진 않았다.
반대쪽 슬로프는 뭐랄까, 정말 말 그대로 난이도가 높았다. 산 그림과 같이 기울기가 가파른 경사면이었고, 햇빛도 들지 않았다. 눈의 상태는 정말 최상급으로 좋았지만, 춥고 무서웠다. 그래도 재밌었다. 블루 슬로프와 레드 슬로프를 번갈아가면서 타면서 재미있게 탔던 것 같다.
아로자 반대쪽 슬로프
https://youtube.com/shorts/WtGdQ_JHDzQ
이쪽 슬로프에는 눈 상태가 너무 좋아서 적어도 한시간 동안은 재미있게 스키를 즐겼다. 이후에 스키 강습을 받는 친구가 강습을 마치고, 우리가 있는 여기까지 올라오는데 어려움을 겪어서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대로 리프트를 번갈아가면서 올라가면 상당히 오래걸릴게 분명하기에 짧은 슬로프를 타고 돌아가기로 했다.
여기서 살짝 위기에 봉착했는데, 우리가 진입한 코스가 레드와 블랙 슬로프밖에 없는 22번 코스였다. (난이도가 상당하다는 뜻이다.) 리프트를 타고 다시 내려갈지 아니면 그냥 내려갈지 고민했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용기있게 도전하기로 했다. 어느 방향으로 가든 난이도가 상당한 슬로프여서 조금 많이 쫄아있는 상태였다. 슬로프를 내려다보기만 해도 까마득하긴 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그래도 적당히 잘 내려왔다. (내려왔으니 된것 아닐까?) 나는 도저히 무서워서 못내려오겠어가지고 스키를 벗고 슬로프 바깥으로 걸어서 내려왔는데, 경사가 상당해서 자꾸 발이 미끄러졌다. 결국 걸어내려오는것조차 어려워서 경사면을 붙잡고 기어서 내려오기로 했다. 다행히 보드를 타고 내려오시는 고수 아주머니께서 내 스키와 폴을 들고 블랙 슬로프와 레드 슬로프의 분기점까지 가지고 내려와주셔서 편하게 내려올 수는 있었다.
넘어져서 대자로 엎어져 누워서 눈을 잡고 살살 내려왔는데 경사가 어찌나 심한지 넘어진 채로 계속 가속이 되었다. 이대로 쭉 내려가게 된다면 블랙 슬로프로 진입하게 되는데 블랙 슬로프는 말 그대로 그냥 절벽처럼 보였다. 레드 슬로프에서조차도 넘어졌는데 멈추지 못하고 점점 더 빠르게 미끄러지는데 이대로 블랙 슬로프로 들어가게 된다면 크게 다칠게 분명해 보였다. 그래서 진짜 이 순간 만큼은 살고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다행히 내 스키를 들고 내려와주신 보드를 타고 있는 아주머니께서 블랙 슬로프에 진입하기 전에 잡아주셔서 멈출 수 있었다. 진짜 무서운 경험이었다.
다행히 스키를 받아서 다시 장착하고 레드 슬로프로 진입 했는데, 그 뒤로도 힘이 풀려서 제대로 내려오지 못하고 넘어져서 결국 스키를 타시는 노부부의 도움을 받아서 어떤 할머니가 내 스키를 들고 내려와주시고 할아버지가 같이 왔던 일행을 보조해주었다. 지금 보면 충분히 할 수 있을것 같은데, 블랙 슬로프의 위압감에 너무 긴장을 해서 그런지 너무 겁쟁이 같은 모습을 보이고 말아버렸다.
다행히 무사히 내려와 리프트를 타고 산 정상에 다시 올라올 수 있었다. 그곳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도 먹고 에너지를 보충하면서 쉬다가 마지막 스키를 타고 아로자 마을로 내려오기로 했다.
이제 하산할때쯤 되어서 슬로프에 슬슬 구름이 끼기 시작해서 조금 춥게 느껴지긴 했다. 저녁 4시에 가까워져서 슬로프 중간중간의 오두막에서 파티가 열리기 시작했고, 신나게 음악을 틀고 춤추는 사람들의 소리가 이 멀리까지 들렸다.
리조트가 워낙 크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서 슬로프를 반복해서 타지는 못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슬로프만 시도했던 것 같았다. 아는 슬로프면 영상도 찍으면서 내려올텐데 그럴 기회가 없어서 살짝 슬프긴 했다. 그래도 곳곳의 풍경이 아름다워서 기록은 못하더라도 눈은 즐거운 시간이었다.
집에 돌아가니 거의 9시가 됐는데, 마델린이 저녁을 미리 준비해줘서 가자마자 지친 몸을 이끌고 바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치킨에 사워크림, 감자, 당근, 생강 등 다양한 재료를 넣고 오븐에 한참을 구워서 만들어낸 요리였다. 스키를 끝난 뒤에 이렇게 엄청난 요리를 준비해준 마델린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내며 오늘 힘든 일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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