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10. 09:42ㆍ역사서 2024년/3월의 기록 - 교환학생일기
즐거운 월요일 아침. 3월달 일기를 미루고 있었더니 두달 뒤의 시점에 일기를 쓰게 되었다. 더이상 미룰 수는 없어서 3월 달부터 오래된 일부터 차근히 기억나는 일 위주로 일기를 써나가기로 했다.
아침에 연구실에 들러서 자리 배정 사진을 찍었다. 왼쪽이 작업 테이블이고, 오른쪽에 보이는 테이블에 앉아서 연구를 하면 됐는데, 연구실을 쓰는 3명 모두 컴퓨터로 일을 하기 때문에 작업 테이블을 쓸 일이 따로 없었다. 자리와 공간이 넓고 쾌적해서 연구하기 상당히 좋았다. 창문 밖의 뷰도 상당히 예뻐서 마음의 안정을 준다. 창문도 길쭉하고 커다란 모양이라 채광도 좋고 아무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연구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Introduction to Robotics and Mechatronics 라는 과목의 랩 수업을 듣고, 강의 수업을 들으러 가기까지 2시간 정도 시간이 있어서 이 틈에 병원을 가기로 했다.
토요일 부터 끈적한 투명 주황 콧물이 흘러나오고, 콧물이 지나간 자리에 딱지가 졌다. 그리고 염증 가득한 가래에서 검붉은 피가 나와서 큰일난게 아닌가 싶어서 한시라도 빨리 병원을 갔어야 했다.
스위스 병원비가 전세계 1등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에 돌아가기까지는 아파도 참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스위스 병원 여러 후기를 읽어보는데, 의사 진료 한번에 최소 30만원은 깨지고, 접종 한번을 맞으면 또 그만큼이 더 청구된다는 괴담만 보였다. 적십자의 나라라면서 세계에서 가장 병원비가 비싼 나라라니...
세계 병원비 순위
https://travelview.co.kr/domestic/article/1402/
병원비가 집 한채 값? 여행 중 다치면 최악이라는 나라 TOP3
최근 설 연휴를 맞아 공항이 해외여행객들로 북새통이었는데요. 설, 추석과 같은 긴 연휴뿐만 아니라 휴가철 등에도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일은 이제 흔한 일상이 됐
travelview.co.kr
자주 아픈 나로서는 스위스 살면서 병원을 못해도 2번은 갈것 같아서 가장 좋은 보험으로 들었다. 병원을 한번이라도 가게 된다면 비싼 보험을 드는게 이득이라 엄마 아빠와 상의 후에 큰마음 먹고 보험을 결정했다. 스위스 의료비와는 별개로 보험 시스템은 이해하기 쉽게 굉장히 잘 되어 있었다.
스위스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무조건 3개월 이내에 사설 보험 업체와 보험 계약을 체결 한 후 시청에 보고해야 한다. 이를 무시하면 정부 측에서 달에 90만원 가까이 하는 비싼 보험을 강제로 들게 해버린다. 아래 그림은 ETH 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보험 목록인데 일반 보험에 비해 굉장히 저렴하고 금액적인 보장이 잘 갖춰져 있다.
가장 중요한 개념은 Deductible 과 Cost Contribution 이다. Deductible 은 환자가 1년에 최대로 내는 병원비이다. 예를 들어 Deductible 이 CHF 500 이라면, 환자는 1년에 CHF 500 까지 자비로 병원비를 지불하고, 초과분에 대해서는 보험사가 나머지를 지불하게 된다. Cost Contribution 은 이 초과분을 지불할 때 고객과 보험사가 몇대 몇으로 나눌지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Cost Contribution 이 0 이면 고객은 초과분에 대해서 일절 금액을 지불할 필요가 없고, Cost Contribution 이 10이라면, 환자는 초과분에 대해서 10% 만 지 불하고 나머지 90% 는 보험사가 처리해준다.
나는 Groupe Mutuel 의 Academic Care CHF 140/month 옵션을 선택했는데, Deductible 0 에 Cost Contribution 0 이다. 그래서 보험에 포함되는 항목에 대해서 병원과 약국에 일체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또 스위스 보험이 좋은게, 보험 보장 내용이 법에 의해 정해져 있는데, 그 표준이 되는 항목이 KVG Insurance 이다. 여기에 포함되는 옵션이 모든 왜래 진료와, 응급실, 약값이 포장되어 있어서 심각하다 싶으면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고 약국에서 약을 처방받고 나와도 돈을 전혀 지불할 필요가 없다.
추가적으로, 보험을 들기 이전의 병원비에도 보험이 소급적이 적용되기 때문에, 보험사에 급하게 이거 보장 받을 수 있는지 메일을 보내서 확인하고 병원으로 갔다. (그래서 보험료를 원칙적으로 스위스에 도착한 시점부터 내야 한다.) 보험 카드를 우편으로 받게 되면 병원에 보험 카드를 제시하고, 병원에는 전혀 결제를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내가 가입한 보험사가 가입 처리까지 3주 정도 걸린다고 해서, 혹시나 청구가 된다면 먼저 결제하고 영수증을 증빙 하면 돈을 다시 돌려준다고 했다.
그런데 일반 병원에 예약을 하려면 보통 2주 정도가 소요되기에, 무슨 문제가 있을지 몰라서 USZ 이비인후과(HNO) 응급센터에 방문했다. USZ 는 Universitätsspital Zürich 의 약자로, 취리히 공과대학과 취리히 대학 바로 뒷편에 있는 대학병원이다. 병원 캠퍼스가 학교 급으로 굉장히 큰 데다가 응급의료실이 진료과마다 있었다. 각 과 응급실에서는 환자의 응급한 순위에 따라 진료를 본다고 했다.
응급실 접수센터에서 접수를 했다. 원래는 보험 카드만 제시하면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이지만, 나는 아직 보험 카드와 거주허가증 실물을 받지 않아서 여권과 거주허가증 서류, 각종 개인정보를 제시하고 접수를 할 수 있었다. 그래도 굉장히 친절이 맞아 주셔서 빠르게 진료를 볼 수 있었다. 대기하는 사람 중에 응급한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이기도 했거니와 기다리는 사람 자체가 적어서 10분 정도 기다린 후에 진료를 봤다. 대략 접수하고 4번째 정도에 불려서 갔다.
환자들이 앉아서 대기하고 있으면 그 환자에 배정된 의사가 직접 환자를 호명하면서 찾으러 오는데, 여기는 간호사분들을 부려먹지 않아서 좋았다. 응급진료를 보는 칸은 대략 8개 정도가 아래 그림과 같은 셀처럼 파티션으로 나눠져 있었다. 자리에 앉으면 의사분이 자기 소개를 하고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언제부터 증상이 있었는지, 현재 상태는 어떤지를 굉장히 자세히 물어본다. 내가 말한 요소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차트에 필기했던 것 같다.
진료는 대략 1시간 정도 봐주셨는데, 너무 꼼꼼하게 하나하나 체크해주셔서 살짝 놀랬다. 만에 하나의 가능성까지 고려한 것 같았다. 처음에 얼굴 여기저기를 눌러보면서 통증을 확인했다. 다행이 얼굴을 눌렀을 때 통증은 없었는데, 염증이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목 뒤를 확인하고, 코에 내시경을 넣어서 각 부비동을 확인했다. 내시경 영상을 보면서 하나하나 설명해주셨는데, 살짝 과할 정도로 자세하고 친절했다. 왼쪽 아래 부비동에 염증이 생긴게 관찰이 됐었다. 내시경이 깊숙히 들어가서 재채기가 많이 나왔는데, 대부분 그런다면서 옆 벽면에 있는 휴지를 뽑아주셨다. 그리고 귀 상태도 확인했는데, 귀지가 조금 있다면서 석션으로 양쪽 귀의 귀지도 제거해주셨다.
검사가 끝난 후 약 10분 정도 동료와 의논 후에 최종 처방을 내리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얼굴 구조 그림과 함께 자세히 의심 질병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셨다. 대부분의 부비동염은 90% 가 바이러스 질환이라 항생제는 처방 안하는게 좋을 것 같다고 설명을 해주셨고, 혹시나 5일 안으로 증상이 심해지면 다시 찾아오라고 말씀해주셨다. 3가지 약품을 처방해줄건데, 용도와 사용법, 그리고 어느 상황에 써야 하는지까지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한국이랑 다른 점을 찾자면 진료가 굉장히 여유로웠고, 의사 혼자의 생각으로 진료하고 처방을 내리지 않았다. 환자랑 끊임없이 소통하고, 추가적으로 해볼만한 검사에 대해서 항상 환자의 의사를 물어봤으며, 마지막 처방을 내릴 때도 동료 의사와 의논을 한 후에 결정을 내렸다. 또, 약품 하나하나의 사용법까지도 자세히 설명해주는 걸로 봐서 환자 한명에 대해 굉장한 정성을 쏟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좋은 경험이었다.
한국과 같이 진료를 마친 후에 수납을 하고 갈 필요도 없고, 진료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가면 된다. 나는 잘 몰라서 접수 데스크에 줄을 서서 다시 물어봤는데, 비용은 우편으로 청구 되고 따로 절차는 필요 없이 돌아가면 된다고 했다. 2달이 지난 지금도 우편을 못받은 것을 보면 보험사에서 그새 처리해준 모양이다.
대기보다는 진료가 생각보다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부지런히 움직여서 다음 수업에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아래 그림은 USZ (취리히 대학병원) 캠퍼스 지도인데, 아래 회색 건물이 ETH 메인 빌딩이다. 수업을 하다 보면 종종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대학병원 캠퍼스가 가까이 있어서 언제든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점이 좋았다.
아래 사진은 비오는 날에 USZ 부터 ETH 캠퍼스까지 걸어가는 길이다. 돔이 얹혀져있는 건물이 ETH 메인 빌딩이다.
수업을 마치고 동네 약국에서 약을 받으러 왔다. 약국에 의사 3분이 있었는데, 보험 카드와 처방전을 보여주면 처방에 맞는 약을 가져다 주셨다. 또 신기한 점은 한국처럼 약을 소분해 조제해서 주지 않고, 약을 박스도 안벗기도 통째로 주신다. 그래서 약간 약사라기보다는 상점 주인같은 느낌이었다. 약국 안에 무료로 마실 수 있는 커피머신과 사탕도 준비되어 있었다.
원래는 보험 카드를 내면 보험사에서 처리해주는 시스템인데, 아직 카드가 없어서 약국에서는 결제를 해야 했다.
집에 돌아와서 영수증 내역을 확인했는데, 역시 스위스 물가 아니랄까봐 역시 가격에 감탄했다. 가격이 CHF 62.25 (약 95,000 원) 이 나왔는데, 이중 약국 서비스 이용료 CHF 7.55 (약 11,000 원) 이 따로 청구되는것도 놀라웠고, 코 세척 식염수가 CHF 29.70 (약 45,000 원) 이었다. 특별한 기능이 있는지 모르겠고 단지 소금물인 것 같았는데 이정도 가격을 받아도 되나 싶었다.
아무렴 보험사에서 처리해줄 테니까 의사선생님이 알려준 방법대로 코 한쪽을 막고 반대쪽 손으로 코를 세척하고, 연고도 바르고 하루를 마루리했다. 여러모로 경험을 한 하루였다.
'역사서 2024년 > 3월의 기록 - 교환학생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Mar 20, 2024 | 학교 수업 일상 (0) | 2024.05.10 |
---|---|
Mar 19, 2024 | 캠퍼스 출퇴근길 (1) | 2024.05.10 |
Mar 16, 2024 | 스키 (Arosa) (0) | 2024.03.30 |
Mar 15, 2024 | 학교 일상 전반 (1) | 2024.03.23 |
Mar 13, 2024 | 연구실 자리 배정 (1) | 2024.03.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