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 04, 2024 | 부활절 여행 - 벨기에 (6)

2024. 4. 15. 07:21역사서 2024년/4월의 기록 - 교환학생일기

아침 7시에 잠도 제대로 못자고 브뤼셀에 도착해서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벨기에에 도착하자마자 테러 위험 경고 3단계 발령중이라는 대한민국 영사관 문자와 함께,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유럽에서 치안이 좋지 않은 나라라고 해서 진짜 너무 괜히 왔나 싶었다. 이 조그만한 나라에 테러에 소매치기가 판을 치는데다 도로에는 하루종일 경찰차와 응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다니고 있고, 화장실 입구마다 돈을 내라고 지키고 있는 걸 보면 진짜 한숨만 나왔다.

 

벨기에서 1박을 하면 바보라는 말을 듣고, 아침 7시에 도착해서 저녁 6시 버스를 타고 네덜란드로 갈 계획이었는데, 고작 이 하루의 계획 조차 달갑지 않았다. 당장에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서, 짐을 안전하게 맡기고 잠깐 눈을 붙일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곧장 가장 가까운 스타벅스로 가서 벨기에 계획을 대충 세우고 캐리어를 부둥켜 앉은 채로 잠깐 졸았던 것 같다. 커피를 안마셔서 무슨 프라푸치노 하나 주문했는데 7.6 EUR (11,000 원) 이 나와서 벨기에도 스타벅스가 비싸구나 라고 생각했다. 다들 나중에 벨기에 스타벅스가 싸다고 하는 걸 보니 이 지점만 비싼것 같았다.

 

 

브뤼셀의 관광지는 대개 그랑플라스 근처에 몰려 있었는데, 진짜 부지런히 다니면 반나절 만에 모든 곳을 다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관광지끼리 몰려 있어서 가깝고, 별로 볼게 없기도 하다. 그래서 왕복 교통권을 끊어서 플릭스버스 승강장에서 그랑플라스 쪽으로 이동해서 이곳에서 걸어다니면서 일정을 소화하고 다시 지하철로 돌아오기로 했다. (진짜 하루 교통권 끊을 필요 없이 이래도 된다.)

 

그랑플라스 쪽으로 가서 그 근처에 있는 되게 유럽 느낌이 나는 골목을 돌아다녔다.

 

그랑플라스에 도착해서 10시쯤 되었던 것 같은데, 모든 가게들이 오픈 준비중이었는지 문은 열었는데 15분 뒤에 오라고 했다. 그래서 15분 뒤에 가니까 또 5분 뒤에 오라고 해서 장사할 마음이 없는건가 싶긴 했다. 그래서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여러 상점들을 구경했다. 벨기에가 와플로 유명해서 그런지정말 보기만 해도 달아보이는 와플이 다양하게 있었고, 기념품점에서 오줌싸개 동상 굿즈도 여러개 볼 수 있었다. 코르크 따개는 학대가 아닌가 싶긴 했다.

 

 

민석이형의 벨기에 친구가 추천해준 감자튀김과 튀김 간식을 먹으러 갔다. 나중에 찾아보니 벨기에가 감자튀김의 원조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감자를 즉석에서 기계에 넣고 두툼하게 썰어 튀기고, 그 위에 두꺼운 소스를 뿌려서 줬다. 감튀의 양에서 한번 놀라고 감튀의 두께의 두번 놀란다. 아무튼 되게 맛있었다. 그리고 무슨 소고기 꼬치 튀김과 소세지 튀김을 먹었는데, 맛은 있었지만 가격에 비해 양이 충분하지는 않아서 그저 그랬다. 아무튼 한국의 떡볶이 튀김과 같은 느낌으로 벨기에의 젊은 세대가 즐겨 먹는 간식이라고 한다.

 

 

대충 간식으로 배를 채우고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이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는 그랑플라스 광장으로 갔다. 건물은 금칠이라도 해놓은 듯 황금색으로 반짝였으며, 굉장히 정교하게 장식된 조각상들과, 벽, 첨탑들은 되게 흥미롭긴 했다. (그래도 난 청계천을 낀 광화문 광장이 조금 더예쁜 것 같다.)

 

 

브뤼셀 그랑 플라스

https://youtube.com/shorts/UE8zae1DE_A

 

이때 무슨 비가 왔다가 날이 개서 해가 쨍쨍해졌다가를 반복해서 사람 마음을 계속 들었다 놨다 했다. 아무튼 날씨가 맑아질 찰나를 잘 노려서 그랑 플라스에서 사진 찍고 놀다가 조금 걸어가서 오줌싸개 동상을 보러 갔다. 다들 정말 쪼그만해서 정말 볼거 없다고 했는데, 막상 가보니 정말 볼것 없다. 작은 동상 앞에 사람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어서 오줌싸개 동상과 같이 사진찍기는 좀 어렵긴 하다.

 

다만 하나 재밌는 점은 오줌싸개 동상이 입고 있는 옷이 계속 바뀐다는 점인데 무슨 옷을 입고 있을지 확인하는 재미는 있을 것 같다. 이번에 갔을 때는 나토 모자, 옷을 입고, 나토 깃발을 들고 있었다. 아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비판하는 유럽의 전체적인 기조에 동참하는 거 같다. 벨기에는 유독 유럽연합기를 많이 달고 있었는데, EU 본부가 있어서 그런 영향도 있는 것 같다.

 

 

또 벨기에의 와플을 먹으면서 조금 쉬었다. 와플이 또 벨기에가 원조라고 해서 하나는 먹고 가야겠다는 생각은 있었다. 벨기에에서 먹을 수 있는 와플의 종류는 두가지가 있는데, 브뤼셀 와플과 리에주 와플이라고 했다. 벨기에 현지인들이 모두 리에주 와플을 추천하는걸 보니 리에주가 더 맛있는 것 같긴 하다. 벨기에 와플은 사각형의 두껍고 딱딱한 와플이고, 리에주 와플은 원형으로 얇고 쫀득한 와플인 것 같다. 리에주 와플은 빵 자체에 단맛이 있어서 그렇게 달게 토핑을 올리지 않아서 풍미가 좋다고 한다.

 

그래서 리에주 와플에 익힌 딸기, 아이스크림을 얹어서 8.5 EUR (12,000 원) 되는 가격에 와플을 하나 사서 나눠먹었다. 벨기에가 와플의 고장이라 그런지 바가지가 장난이 없다. 사실 당이 좀 떨어져서 요거트 음료를 마시고 싶었는데, 차이나 타운이 아닌 이상 카페에서 커피 이외의 음료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다음 행선지로 예술의 언덕 (Mont des Arts) 을 가기로 했다. 브뤼셀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대서 이건 조금 기대가 됐다. 가는길에 브뤼셀 시내 이곳저곳을 구경도 하고, 계속 오르막길을 올라갔다. 가다보니 조각상과 각종 조형물이 있는 공원에 도착했는데 이곳이 예술의 언덕이었다. 건물에 가려 브뤼셀 시내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정원이 예쁘게 꾸며져 있어서 나쁘지 않았다.

 

 

 

예술의 정원을 다 오르면 브뤼셀 왕궁 (Royal Palace of Brussels) 이 나오는데, 이때부터 날이 확 개서 기운도 나고 기분이 좋아졌다. 버킹엄 궁전을 다녀와서 그런지 궁전 치고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여기가 정문이 아니어서 그랬던 거였다.

 

 

정면에서 바라본 브뤼셀 왕궁은 정말 거대하고 그 앞에 있는 정원과 조화가 잘 아우러져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 같은 느낌이었다. 심지어 버킹엄 궁전과 같이 철조망으로 가려지지 않고 삼엄한 경비도 없어서 조금 더 시민에게 개방적인 장소인 점도 더 친근하게 와닿았다. 궁전 위에서 휘날리는 벨기에의 국기는 벨기에 건축과 미술의 위용을 뽐내는 것 같았다.

 

 

 

브뤼셀 왕궁

https://youtu.be/tnL4apXerME

 

그 뒤로 민석이형은 와플을 먹으러 떠나고 나는 벨기에 왕립 미술관으로 갔다. 브뤼셀에서 할 컨텐츠가 다 떨어져서 그나마 미술관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영박물관을 다녀왔는데 웬만한 미술관과 박물관으로 성이 찰리가 없다.) 학생 할인을 받아서 두개의 전시관을 5 EUR 라는 합리적인 가격에 관람할 수 있었다.

 

 

 

사실 그렇게 유명한 작가의 작품은 별로 없어서, 르네상스 시대 종교물과, 현대 미술 작품으로 승부를 보는 미술관인 것으로 보였다. 그 중에서 눈에 띄었던 조각상과 미술품들 사진을 몇개 가져와봤다. 순서대로 이름모를 사람 조각상, 독수리에게 간을 먹히는 프로메테우스, 아르테미스 (다이애나) 조각상, 2층에서 내려다보는 미술관, 예수의 십자가, 아담과 하와 인듯 하다.

 

 

 

그리스 신화부터 중세 시대 종교물 까지 다양한 작품을 아우르고 있다. 대개 풍경화나 인물화 보다는 신화와 종교적인 작품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중세 종교물로 유명한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작품도 많이 보긴 했는데, 사진이 예쁘게 담기지 않아서 찍지 못한 것이 조금 한탄스럽다. 거대 작품들을 모아놓은 방도 있었는데, 그림 하나하나의 정말 크기가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민석이형이 Chez Leon 이라는 식당의 -20 EUR 할인 쿠폰을 받아서 그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어떻게 한거지? 재주도 좋아. ) 유럽에서 제대로 된 외식을 별로 해본 기억이 없어서 정말 기대를 가득 안은 채로 갔다.

 

 

런던과 다르게 벨기에는 나름 맛잘알이었다. 벨기에 친구가 추천해준 꼭 먹으라는 음식 위주로 주문을 했는데, 화이트 와인에 홍합을 조리한 음식과, 감자에 돼지고기 스테이크 같은 음식이었다. 여기에 홍합 파스타까지 시켜서 정말 배가 터지게 먹었다. 무슨 메뉴판에 영어가 없이 Dutch 랑 French 로만 적혀 있어서 메뉴의 뜻과 이름은 잘 기억이 안난다. :/ 아무튼 총 60 EUR 정도가 나왔는데, 이중에서 20 EUR 을 할인 받아서 굉장히 합리적인 가격으로 배가 부르게 잘 먹었으니 된거 아닐까?

 

 

벨기에에서 플릭스버스를 타고 저녁 9시 쯤에 네덜란드 Amsterdam Sloterdijk 역에 도착했다. 역에 도착 하자마자 역학 대마 냄새가 정말 많이 났다. 진짜 버스를 정류장에서, 길거리 다니면서, 아니면 지하철 기다리면서, 심지어 대마를 피운 사람이 지하철 안에서 내뱉는 날숨 같은 곳 등 여기저기서 대마 냄새가 가득했다. 오히려 담배 냄새를 맡으면 향기롭다고 느껴질 정도로 역했다. 이 냄새에 적응을 하는데 정말 오래 걸렸다. (못한 것 같다.) 네덜란드에 올 때는 이 점을 좀 각오 해야 할 것 같다.

 

 

네덜란드에는 ijk 라는 음절이 되게 많은데, (예. Dijkstra) 수학에서 수열의 합 연산자 사용할 때의, i, j, k 를 내리 쓰는 것 같아서 단어를 보면서 살짝 묘했다. 이대로 집에 돌아가서 사람이 5명이나 있는 8인 도미토리에서 다음날 일정을 위해 잠에 들었다. 벨기에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불만이 가득하고 고통스러웠지만, 시간이 갈수록 날이 개고 기분도 좋아지면서 나름 즐겁게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