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12. 04:41ㆍ역사서 2024년/2월의 기록 - 교환학생일기
스위스에서 첫 스키를 타러 갔다. 전날 밤에 급하게 기숙사 톡방에 갈사람을 모집해서 갔는데, 사실 나도 처음이라 시설이나 교통, 비용에 대해 아는게 하나도 없는데 연락이 온 사람들에게 열심히 찾아서 답변하느라 진땀을 좀 뺐다. 작년에 스위스로 교환을 다녀온 사람들이 쓴 보고서에는 snow 25 라는 패스가 있어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25/35/45 프랑으로 스키 리프트와 왕복 교통권을 구매할 수 있다고 했는데, 올해에는 snow' n' rail 이라는 이름으로 프로그램이 바껴있는 것 같았다.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stoos 행 교통권과 스키패스를 61.5 프랑 (약 9.5만원) 으로 구매하고 다음날 8시에 나갈 계획을 세웠다. 스노우 앤 레일은 SBB Half Tax Pass 로 할인 가능하니 참고하시길.
Snow' n' Rail
https://freizeit.sbb.ch/en/stories/snownrail
아침 8 시에 SBB 사무실에 들어가서 Half Tax Pass 를 구매하고 (1년권 180 프랑) 스키패스에 대해 물어봤는데 올해부터 Snow 25 라는 프로그램이 snow' n' rail 로 대체된게 맞는것 같았다. 비용이 많이 오르긴 해서 비용적으로 올해는 스키타기 썩 좋지는 않다고 SBB 직원이 말해줬다. 아침에 기차를 타고 Stoos 산으로 이동했다. 기차에서 보는 모든 스위스 풍경도 아름다웠다. 깎아지른듯한 산 아래에 겨울인데도 초록색 잔디가 자라고 있고, 산을 타고 산 중턱까지 집이 듬성듬성 있는 모습이 내가 생각하던 스위스의 이미지를 드디어 눈으로 본 것 같았다. 기차를 타고 가는데 스위스에는 캐리어 보관대 대신 스키 보관대가 있는게 좀 신기했다. 사람들이 스키를 끼워놓고 도착할때 쉽게 빼갈 수 있도록 설계된것 같은데 정말 편리했다.
Stoos 산 밑에 도착해서 산악열차를 타고 산을 통과해서 산 위에 있는 스키 리조트로 데려다주는데 레일 각도가 47.7 도 까지 기울어진다고 한다. 롤러코스터도 이정도는 못할 것 같은데 산에 이 각도로 터널을 뚫고 열차를 운행하는게 공학기술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산을 타고 올라가니 하루종일 날씨를 흐리게 했던 구름이 발 아래로 깔려있었다. 뾰족한 산들을과 그 사이를 메운 운해를 바라보며 스키를 탄다는 사실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산악열차가 어느정도 고도에 다다랐을 때쯤 창밖 풍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겨울인데도 푸른색인 산 아래턱과는 다르게 산 위는 완전히 눈으로 덮여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기온은 체감 영상 5도 청도로 전혀 춥지는 않았다. 리조트에서 스키 장비를 대여하고 (스키, 부츠, 폴이 세트로 65 프랑, 헬멧이 10프랑) 고글은 대여를 안해주는데다 나는 안경때문에 일반 고글이 맞지도 않아서 180 프랑에 바이저 헬멧을 하나 구매했다. (바이저 헬멧도 대여해주는데가 없다.) 이것도 구구절절 할인을 받은 가격이긴 한데, 나중에 스포츠 매장에서 보니까 100 프랑 근처로 좋은 헬멧 구할 수 있더라. 교통과 스키패스, 나머지 장비 대려료보다 헬멧 가격이 제일 많이 나와서 뼈아팠다.
장비 대여를 마치고 아래저래 하다보니 11시쯤 되어서 본격적으로 스키 타는 시간을 가졌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리프트에 올랐을 때는 정말 다른 세계에 있는 느낌이었다. 산 꼭대기에는 눈이 한가득 쌓여 있었으며 곳곳에 튀어나온 바위를 제외하면 눈밖에 없었다. 산 골짜기를 따라 눈을 깔아놓고 스키를 타는 한국과는 달리, 꼭대기 전체에 쌓인 눈 위를 산 능선을 따라 자유롭게 스키를 타면 됐다. 산 봉우리에서 스키를 타다보니 아름다운 주변의 풍경과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스키를 탈 수 있었다. 또 새로웠던 점을 정리해보자면,
- 스키 코스를 따라서 가도 되지만 어차피 어디에나 눈이 쌓여 있어서 가고싶은 곳으로 가면 된다.
나도 정해진 경로보다는 그 사이로 내려오기도 했고, 고수들은 스릴을 찾아 높은 봉우리에 기어올라간 다음에 절벽같이 생긴 가파른 언덕 내려오기도 한다. - 옆으로 좀만 미끄러지면 낭떠러지인데도 펜스가 없다.
첫 구간부터 떨어지면 60도보다 가파른 경사로 구르는데, 이것때문에 처음에 너무 쫄아가지고 힘을 너무 많이 빼버렸다. - 스키 경로 사이에 돌이 여기저기 튀어나와있다. (잘 피하지 않으면 공중제비 가능)
- 오르막길이 많다.
스키를 탄 채로 잘 걷지 못하면 힘들어지는 부분이다. 산 봉우리를 따라 내려오기 때문에 속도를 잘 유지하지 못하거나 잠깐 골에서 쉬게 되면 올라갈때 살짝 힘이 든다. - 스키 코스가 정말 길다.
코스 하나하나가 정말 길어서 봉우리 중간중간에서 쉬는 사람이 많다. - 날 구해줄 구조팀이 없다.
리프트는 날 저기 산 끝까지 올려다주는데 중도 포기한다고 날 구해러 와줄사람은 없다. 이악물고 내려가야 한다. 다만, 스키 고수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와서 스키, 폴을 주워다주거나 스키를 대신 가지고 내려가주는 등 도움을 자주 받을 수 있다.
스키 코스의 난이도는 파랑, 빨강, 검정색이 있는데, 우리가 간 코스에는, 그리고 스투스 산 전반적으로 빨간색과 검은색 코스밖에 없었다. 그래도 빨간색 정도는 탈 수 있겠지라는 오만을 가졌던 내 자신을 반성한다. 나름 스위스에서 중급 코스일텐데 한국 상급보다 가파를 정도로 이거 경사가 생각보다 많이 (정말 많이) 가파르다. 가장 어려운 구간 기준이 아니라 코스의 전체적인 난이도를 말하는 것 같았다. 오르막길이 종종 있는것까지 고려하면 그 경사를 내려오기 위해 정말 가파른 언덕이 많다. 가파른 구간에서는 걸어내려올 수도 없어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말 그대로 기어내려왔다. 그리고 초반에 낭떠러지로 떨어지면 죽을수도 있다는 생각에 온몸에 긴장을 하고 타서 그런지 너무 근육에 힘이 다 풀려버려서 제대로 방향조절도 잘 되지 않아 충분히 할만한 코스에서도 어렵게 내려왔던 것 같다.
내려와서 싸온 점심을 먹고, 리조트 카페에서 베리 샤베트와 물을 주문해서 좀 쉬었다. 샤베트가 4프랑인데, 물 한컵이 5.5 프랑정도 해서 좀 놀랐다. (스위스에서는 어디에서나 물을 쉽게 구할 수 있다. 탭워터, 분수대 등등) 어느정도 긴장이 풀리고 나서는 잘 넘어지지 않고 코스를 좀 내려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반대쪽 슬로프에서 연습하다가 오전에 실패했던 슬로프도 용기를 내서 2번정도 (쉬운 길을 개척해) 내려왔다. 어차피 내려가야하는 고도는 똑같기에, 오히려 쉬워보이는 길로 가면 나중에는 어려운 길이 나와서 처음에 좀 무섭더라도 지금 당장 보이는 가파른 길을 통해 가야 아주 어려운 길을 만나지 않을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스키를 타고 내려가다가 넘어질 때마다 종종 쉬면서 사진을 찍었는데, 산의 웅장함과 끝없이 눈이 덮인 산 봉우리를 보자면 스위스 스키장의 위엄을 느낄 수 있었다. 왜 스위스의 자연을 사진으로 잘 못담는다고 하는지 느껴졌다. 저 높은 봉우리와 저 아래까지 뻗어있는 골짜기까지의 거대한 자연의 웅장함을 사진 한장으로 담을 수가 없다. 아름다움은 담을 수 있어도 눈으로 보는 위압감을 사진으로 담기란 어려운 것 같다.
해가 지기 전 3시 반쯤 슬로프에 사람이 거의 빠져서 우리도 일찍 마무리하고 내려왔다. 리프트도 4시까지만 운영을 하거니와 슬로프에 조명이 없어서 해가 넘어가서 슬로프에 그늘이 지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다 마무리하고 내려가는 것 같았다. 실제로 민석이형을 제외한 같이 왔던 일행들도 3시쯤에 내려갔다고 들었다. 실제로 그늘이 지니까 눈이 다시 얼어서 설질이 안좋아지는게 느껴져서 스키를 타기에도 쾌적한 환경은 아니었다. 다시 굉장한 각도의 산악열차를 타고 아래 동네로 내려왔다. 구름이 가득 메운 골짜기를 보고 스키를 탈때는 기분이 좋았는데, 여전히 안개가 자욱한 아랫동내에 내려오자니 구름이 썩 달갑진 않았다.
스위스 전역의 교통을 7시 이후에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서 근처에서 시간을 좀 때우다 가기로 했다. 근처 마을로 버스를 타고 가서 마을 구경을 좀 하려고 했다. 어딜 보든지 급경사를 이루며 올라가는 높은 산들이 있어서 경치가 상당히 아름다웠다. 뭉툭한 한국 산봉우리와는 다르게 산이 정말 뾰족하고 높다. 또 겨울같지 않게 따뜻하고 푸른 마을과는 다르게 산 위에는 눈이 쌓여 있는 곳이 많았다.
5시 정도가 되니 교회의 우렁찬 종소리가 마을을 가득 메웠는데, 취리히를 비롯해 교회마다 종탑을 설치해 온 마을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소리가 꽤 크긴 하지만 사이렌과 달리 듣기 거북하지 않았고, 영화로만 보던 유럽 마을 분위기를 몸소 느꼈다. 집 사이사이로 보이는 산들의 운치도 굉장히 아름다웠다.
정말 신기했던 장면이었는데, 해가 질때쯤 되니 하늘이 핑크색으로 변했다. 놀랍게도 필터 적용 안한 사진이다. (사진을 워낙 많이 찍어서 보정할 여유도 없다.) 호준이 스토리를 보니 이날 취리히의 하늘도 핑크색으로 바꼈던 것 같다. 처음 보는 광경이라 하늘을 보면서 감탄만 했던 것 같다. 원리도 모른채로 이런 하늘이 다시 나타나기만을 고대하고 있다. 해가 지고 있는 반대쪽 하늘 역시 굉장히 아름다웠다. 하늘 색은 평범한데 구름은 붉게 물들어서 하늘이 마치 금붕어가 헤엄치는 어항, 터키석 원석을 연상하게 했다. 아름다운 순간은 금방이고 해는 곧 져서 깜깜해진 마을에서 핸드폰 배터리도 꺼져 헤매다가 7시 기차를 타고 돌아왔다. 굉장히 피곤하지만 알찬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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